꿈하늘 - 6

천국은 하늘 위에 있고 지옥은 땅 밑에 있어 그 상거가 천 리나 만 리인 줄 아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라 실제는 그렇지 않아서 땅도 한 땅이요, 때도 한 때인데 제치면 임나라고 엎치면 지옥이요, 세로 뛰면 임나라고 가로 뛰면 지옥이요, 날면 임나라며 기면 지옥이요, 잡으면 임나라며 놓치면 지옥이니, 임나라와 지옥의 상거가 요것뿐이더라.
지옥이 이미 부서지매 한놈이 눈을 드니 금으로 지은 집에 옥으로 쌓은 담이 어른어른하고 땅에 깔린 것은 모두 진주와 금강석이요, 맑고 향내나는 공기가 코를 찔러 밥 안 먹고도 배부르며, 나무마다 꽃이 피어 봄빛을 자랑하며 새는 앵무, 공작, 금계, 백학, 꾀꼬리같이 듣고 보기가 좋은 새들이며 짐승은 사람을 물지 않는 문호(文虎), 문표(文豹) 같은 짐승들이요, 거리마다 신라의 만불산(萬佛山)을 벌여 놓고 집집에 고구려의 수모욕을 깔았으며 입은 것은 부여의 문수(紋繡)와 진한의 겸포며 두른 것은 발해의 명주와 신라의 용초며 들리는 것은 변한의 가야금이며 신라의 만만파 쉬는 저며 백제의 공후도 있고 고려의 국악도 있더라. 한놈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제는 내가 임나라에 다다랐구나."
하고 기꺼워 나서니 임나라의 모든 물건도 모두 한놈을 보고 반기는 듯하더라. 임을 보이려 하나 하늘같이 높으시고 바다같이 넓으시고 해같이 밝으시고 달같이 둥그시고 봄같이 따뜻하고 가을같이 매우사 한놈의 좁은 눈으론 볼 수가 없다.
그 좌우에 모셔 앉으신 이는 신앙에 굳으신 동명성제(東明聖帝), 명림답부(明臨答夫), 치제(治劑)에 밝으신 백제의 초고대왕(肖古大王), 발해 선왕(宣王), 이상이 높으신 진흥대왕(眞興大王), 설원랑(薛原郞), 역사에 익으신 신지선인(神誌先人) 이문진(李文眞), 고흥(高興), 정지상(鄭知常), 국문에 힘쓰신 세종대왕, 설총, 주시경, 육군에 능하신 발해 태조, 연개소문, 을지문덕, 해군에 용하신 사법명(沙法名), 정지(鄭地), 이순신, 강토를 개척하신 광개토왕(廣開土王), 동성대제(東聖大帝), 윤관(尹瓘), 김종서(金宗瑞), 법전을 편찬한 을파소(乙巴素), 거칠부(居柒夫), 망국 말엽에 쌍수로 하늘을 받들던 백제 부여의 복신(福信), 고구려의 검모잠(劒牟岑), 판탕시대에 한칼로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편히 하던 고려의 최영, 강감찬, 이조의 임경업, 외지에 식민한 서언왕(徐偃王), 엄국시조(奄國始祖), 고죽시조(孤竹始祖), 타국에 가서 왕이 된 고운(高雲), 이정기(李正己), 김준(金俊), 사후에 용이 되어 일본을 도륙(屠戮)하려던 신라 문무대왕(文武大王), 계림의 개 되어도 일본의 신인은 아니 된다던 박제상(朴堤上), 홍건적 이백만을 토평(討平)하고 간계에 죽던 정세운(鄭世雲), 본국 팔성(八聖)을 제 지내고 금나라를 치려던 묘청(妙淸), 중국 흥수에 오행치수의 줄로 하우(夏禹)를 가르친 부루태자(夫婁太子), 일위(一葦)로 대해를 건너 도국 만종(島國蠻種)을 개화시킨 혜자 선사(慧慈禪師), 왕인(王仁) 박사, 안시성에서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의 눈을 뺀 양만춘(楊萬春), 용인읍에서 철례탑(撤禮塔)의 가슴을 맞추던 김윤후(金允侯), 교육계의 종주 되어 서양을 쓸리게 하던 영랑(永郎), 남랑(南郎), 국수(國粹)의 무너짐을 놀라 화랑을 중흥하려던 이지백(李知白), 동족에 대한 의분으로 발해를 구원하려던 곽원(郭元), 왕가도(王可道), 왕실을 다물(多勿)하려 하여 피 흘리던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두문동(杜門洞) 칠사현(七士賢), 강자를 제재함에는 암살을 유일 신성으로 깨달은 밀우(密友), 유유(紐由), 황창(黃昌), 안중근(安重根), 넘어지는 대하(大厦)를 붙들려고 의기(義旗)를 잡은 이강년(李康年), 허위(許蔿), 전해산(全海山), 채응언(蔡應彦), 조촐한 진단의 여자몸으로 어찌 도적에게 더럽혀지리요 하던 낙화암의 기빈(妃嬪)들, 임진년의 논개(論介), 계월향, 출세한 사람으로 나라일이야 잊을쏘냐 하던 고구려의 칠불(七佛), 고려의 현린 선사(玄麟禪師), 이조의 서산대사(西山大師), 사명당(四溟堂), 국학에서 비록 도움이 없지만 일방의 교문에 통달하여 조선의 빛을 보탠 불학의 원효(元曉), 의상(義湘), 유학의 회제(晦齊), 퇴계(退溪), 세상에 상관없는 물외한인(物外閑人)이지만 청풍고절(淸風苦節)의 한유한(韓惟翰), 이자현(李資玄), 연진수도(鍊 修道)의 참시( 始), 정염(鄭 ), 건축으로 거룩한 임류각(臨流閣), 황룡사(皇龍寺) 등의 건축자, 미술로 신통한 만불산 홍구유(紅 兪)의 제조자, 산술로 부도(夫道), 그림으로 솔거(率居), 음률로 우륵(于勒), 옥보고(玉寶高), 칼을 잘 만드는 가락의 공장(工匠), 맹호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발해의 장사, 성력(星曆)에 오윤부(伍允孚), 이술(異術)에 전우치(田禹治), 귀귀래래시(歸歸來來詩)로 물질 불멸의 원리를 말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폭국은 베어도 가하다 하여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노설(奴說)을 반대한 죽도(竹島) 정여립(鄭汝立), 철주자(鐵鑄字) 발명한 바치, 비행기 시조 정평구(鄭平九), 이 밖에도 눈 큰 이, 입 큰 이, 팔 긴 이, 몸 굵은 이, 어느 때 외국과 싸워 이긴 이, 어느 곳에서 백성에게 큰 공덕을 끼친 이, 철학에 밝은 이, 도덕에 높은 이, 물리에 사무친 이, 문학에 잘한 이, 한놈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선민들도 많으며 또 한놈이 그 자리에서 보고 이제 기억하지도 못할 이도 많이 이 책에 올리지 못하거니와 대개 이때 한놈의 마음은 임나라에 온 것이 기쁠 뿐만 아니라 여러 선왕, 선성, 선민 들을 뵈옴이 고맙더라.
임나라에는 이렇게 모여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고 한놈이 눈을 들어 본즉 이상도 하고 기질도 하다. 다른 것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낱낱이 비를 만들더니 긴 막대기에 꿰어 드니 그 길이가 몇천 길 몇만 길인지 모를러라. 그 비를 일제히 들더니 곧 하늘에 대고 썩썩 쓴다. 한놈이 놀라 일어나며,
"하늘을 왜 씁니까? 땅에는 먼지나 있다고 쓸지만 하늘이야 왜 씁니까?"
모두 대답하시되,
"하늘을 못 보느냐? 오늘 우리 하늘은 땅보다도 먼지가 더 묻었다."
하시거늘 한놈이 하늘을 두루 살펴보니 온 하늘에 먼지가 보얗게 덮이었더라. 몇천 몇만 비들을 들이대고 부리나케 쓸지만 이리 쓸면 저쪽이 보얗게 되고 저리 쓸면 이쪽이 보얗게 되어 파란 하늘은 어디 갔는지 옛책에서나 옛이야기에나 듣지도 못하던 흰 하늘이 머리 위에 덮이었더라.
"하늘도 보얀 하늘이 있습니까?"
한놈이 소리를 질러 물으니 누구이신지 누런 옷 입고 붉은 띠 띤 어른이 대답하신다.
"나도 처음 보는 하늘이다. 임 나신 지 삼천오백 년경부터 하늘이 날마다 푸른 날고 보얀 빛이 시작하더니 한 해 지나 두 해 지난 사천이백사십여 년 오늘에 와서는 푸른 빛은 거의 없어지고 소경눈같이 보얗게 되었다. 그런즉 대개 칠백 년 동안에 난 변이요, 이 앞서는 이런 변이 없었나니라."
하더니 그만 목을 놓고 우는데 울음 소리가 장단에 맞아 노래가 되더라.
하늘이 제 빛을 잃으니 그 나머지야 말할쏘냐
태백산이 높이야 줄어 석 자도 못 되고
압록강이 터를 떠나 오백 리나 이사 갔구나,
아가 아가 우리 아가
네 아무리 어려도 잠 좀 깨어라
무궁화꽃 핀 가지에 찬바람이 후려친다.
그이가 노래를 마치더니,
"한놈아!"
하고 부르더니 서편을 가리키거늘 한놈이 쳐다보니, 해와 같이 나란히 떠오르는데 테두리가 다 네모가 나고 빛은 다 새까맣거늘 보는 한놈이 더욱 놀라,
"하늘이 뽀얗고 해와 달이 네모지며, 또 새까마니 이것이 임나라의 인간과 다른 특색입니까?"
한데, 그이가 깜짝 뛰며,
"그게 무슨 말이냐? 하늘이 푸르고 해와 달이 둥글며 힘은 임나라나 인간이 다 한가지인데 지금 이렇게 된 것은 큰 변이니라."
한놈이,
"임의 힘으로 이를 어찌하지 못합니까?"
그이가 눈물을 흘리더니 가라사대,
"임나라에야 무슨 변이 나겠느냐? 때로는 모두 봄이요, 땅은 모두 금이요, 짐승도 사람같이 착하니 무슨 변이 나겠느냐? 다만 이천만 인간이 지은 얼로 하늘을 더럽히고 해와 달도 빛이 없게 만들었나니 아무리 임의 힘인들 이를 어찌하리요."
한놈이,
"인간에서 얼만 안 지으면 해도 옛 해가 되고 달도 옛 달이 되고 하늘도 옛 하늘이 되겠습니까?"
그이가 가라사대,
"암, 그 이를 말이냐? 대개 고려 말세부터 별별 하늘이 우리 진단에 들어오는데, 공자 석가는 더 말할 것 없고 심지어 보살의 하늘이며, 제군(帝君)의 하늘이며, 관우(關羽)의 하늘이며, 도사의 하늘까지 들어와 님의 하늘을 가리워 이천만 사람의 눈이 한쪽으로 뒤집혀서 보고하는 일이 모두 딴전이 되어 국전(國典)과 국보(國寶)가 턱턱 무너지기 시작할새 역사의 제1장에 우리 임 단군을 빼고…… 부여를 제껴 놓고 한 나라 반역자 위만으로 정통을 가지게 하며, 고구려의 혈통인 발해를 물리어 북맥(北貊)이라 하며, 백제의 용무(勇武)를 싫어하여 이를 무도지국(無道之國)이라 하며, 우리의 윤리를 버리고 외국의 문교로 대신하고, 만일 국수(國粹)를 보존하려 하는 이 있으면 도리어 악형에 죽을새 죽도 선생 정여립이 구월산에 들어가 단군에게 제 지내고 시대의 악착한 풍기를 고치려 하여 '충신불사이군'이 성인의 말이 아니라고 외쳤나니, 이는 사자후(獅子吼)이어늘 진안(鎭安) 죽도사(竹島寺)에서 무모한 칼에 육장(肉漿)이 되고 그나마 현상(賢相)이며, 명장이며, 위인이며, 재자며, 장사며, 협객이 이 뽀얀 하늘 밑에서 몹쓸 죽음 한 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나니, 이제라도 인간에서 지난 일의 잘못됨을 뉘우쳐 하고 같이 비를 쓸어 주면 이 하늘과 이 해와 이 달이 제대로 되기 어렵지 않으리라."
하며 눈물이 비 오듯 하거늘 한놈이 크게 느끼어 '그러면 한놈부터 내 책임을 다하리라' 하고 곧 비를 줍소서 하여 하늘에 대고 죽을 판 살 판 쓸새 무릇 삼칠은 이십일 일을 지나니, 손이 부풀어 이리저리 터지고, 발이 아파 비를 들 수 없었고, 두 눈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쑥 들어가 힘을 다시 더 쓸 수 없는데, 하늘을 쳐다본즉 여전히 뽀얗더라. 한놈이 이어,
"내 힘은 더 쓸 수 없으나 또 내 뒤를 이어 이대로 힘쓰는 이 있으면 설마 하늘이 푸르러질 날이 있겠지."
하고 이 뜻으로 가갸 풀이를 지었는데,
가갸 거겨 가자 가자, 하늘 쓸러 걸음 걸음 나아가자
고교 구규 고되기는 고되지만, 굳은 마음은 풀릴쏘냐
그기 가 그믐 밤에 달이 나고, 기운 해 다시 뜨도록
나냐 너녀 나 죽거든 네가 하고, 너 죽거든 나 또 하여
노뇨 누뉴 놀지 않고, 하고 보면 누구라서 막을쏘냐
느니 나 늦은 길을 늦다 말고, 이 악물고 주먹 쥐자
다댜 더뎌 다 닳은들 칼 아니랴, 더 갈수록 매운 마음
도됴 두듀 도령님의 넋을 받아 두려운 놈 바이 없다
드디 다 드릴 곳 있으리니, 지경 따라 서고 지고
라랴 러려 나팔 불고 북도 쳤다, 너나 말고 칼을 빼자
로료 루류 로동하고 싸움하여 루만 명에 첫째 되면
르리 라 르르릉 아라, 르릉 아리아 자기 아들 같이
마먀 머며 마마님도, 구경 가오 먼동 곳에 봄이 왔소
모묘 무뮤 모든 사람, 모두 몰아 무쇠 팔뚝 내두르며
므미 마 먼 데든지 가깝든지, 밀어치며 나아갈 뿐
사샤 서셔 사람마다 옳고 보면, 서슬 있어 푸르리라
소쇼 수슈 소름 찢는 도깨비도, 수컷에야 어이하리
스시 사 스승님의 뜻을 받아, 세로 가로 뛰고 지고
아야 어여 아무런들, 내 아들이 어미 없이 컸다 마라
오요 우유 오죽이나 오랜 나라 우리 박달 우리 겨레
으이 아 응응 우는 아기라도, 이 정신은 차리리라
자쟈 저져를 읽으려 하는데 뽀얀 하늘 한가운데에서 새파란 하늘 한쪽이 내다보이며 그 속에서 소리가 난다.
"한놈아, 네 아무리 성력(誠力) 깊지만 한갓 성력으로는 공을 이루기 어려우리니 그리 말고 임의 설시한 '도령군'을 가서 구경하여라."
한놈이,
"도령군이 무엇입니까?"
물은데,
"아! 도령군을 모르느냐? 역사 본 사람으로……."
하거늘 한놈이 눈을 감고 앉아 역사를 생각하니,
'대개 도령은 신라의 화랑을 말함이라,『삼국사기』악지(樂志)에 설원랑이 지었다는 도령(徒領) 노래가 곧 화랑의 노래니, 도령은 도령의 음 번역이요, 화랑은 그 뜻 번역인데, 화랑의 처음은 신라 때에 된 것이 아니라, 곧 단군 시조가 태백산에 내려올 때 삼랑과 삼천 도를 거느림이 화랑의 비롯이요, 천왕당 해모수가 도자(徒者) 수백 명을 거느리고 웅심산에 모임도 또한 화랑의 놀음이요, 고구려의 선인은 곧 화랑의 별명인데, 동맹은 선인의 천제(天祭)이며, 백제의 소도는 화랑의 별명인데, 천군은 또 소도제(蘇塗祭)의 신명(神名)이라 명호(名號)는 시대를 따라 변하였으나 정신은 한가지로 전하여 모험이며, 상무(尙武)며, 가무며, 학식이며, 애정이며, 단결이며, 열성이며, 용감으로 서로 인도하여 고대에 이로써 종교적 상무정신을 이루어, 지키면 이기고, 싸우면 물리쳐, 크게 국광을 발휘한 것이 다 신라의 진흥대왕이 더 큰 이상과 넓은 배포로 폐(弊)될 것을 덜고 미와 굳셈을 더 보태어 화랑사의 신기원을 연 고로 영랑, 남랑의 교육이 사해에 퍼지고, 사다함(斯多含), 김흠춘(金欽春) 등 소년의 피꽃이 역사에 빛내었나니, 비록 배화노의 김부식으로도 화랑 이백의 방명미사(芳名美事)를 찬탄함이라. 그 뒤에 문헌이 잔결(殘缺)되므로 어떻게 쇠하고 어떻게 없어짐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고려사』에 보매 현종(顯宗) 때 거란이 수십만 대병으로 우리에게 덤비매 이지백이 생각하되 화랑을 막을 정신이 있으리라 하며, 예종이 조서(詔書)로 남랑, 영랑 등 모든 화랑의 자취를 보존하라 하며, 의종도 팔관회에 화랑을 뽑아 고풍을 떨칠 뜻을 가졌었나니, 이때까지도 도령군 곧 화랑의 도가국 중에 한 자리 가졌던 일을 볼지나 이 뒤로 어떻게 되었느냐?'
외우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외우더니, 하늘이 다시 소리하기를,
"내가 역사 속에 있는 어려이 생각한다마는 다만 한 가지 또 있다.
『고려사』「최영」전에 최영이 명태조 주원장(朱元璋)과 싸우려 할새, 고구려가 승군 삼만으로 당병 백만을 깨쳤으나, 이제도 승군을 뽑으리라 하였는데, 그 이른바 고구려 승군은 곧 선인군이니, 마치 신라의 화랑도 같은 것이라 그 혼인을 멀리하고, 가사를 돌보지 않음이 승과 같은 고로 고대에도 혹 그 이름을 승군이라고도 하며, 최영은 더욱 선인이나 화랑의 제도를 회복할 수 없어 승으로 대신하려 하여 참말로 승가의 승을 뽑음이나 만일 최영이 죽지 않고 고려가 망치 않았다면, 임의 세우신 화랑의 도가 오백 년 전에 벌써 중흥하였으리라."
하시거늘, 한놈이 고마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땅에 엎드려 절하고,
"한놈이 도령군 곧 화랑이 우리 역사의 뼈요, 나라의 꽃인 줄을 안 지 오래오며, 또 이를 발휘할 마음도 간절하오나, 다만『신지시사(神誌詩史)』나 거칠부의『선사(仙史)』나 김대문의『화랑세기』같은 책이 없어지므로, 그 원류를 알 수 없어 짝없는 유한을 삼았더니, 이제 임이 도령군을 구경하라 하시니, 마음에 감사할 이 대일 곳 없사오니, 원컨대 바삐 길을 인도하사 평생에 보고 지고 하던 도령군을 보게 하옵소서."
하며 어린아기 어미 찾듯 자꾸 임을 부르더니, 하늘에서 홍등 한 개가 내려오며, 앞을 인도하여 오색 내를 지나 옥뫼를 넘어 한곳에 다다르니, 돌문이 있는데 금글씨로 새겼으되 '도령군 놀음 곳'이라 하였더라.
문 앞에 한 장수가 서서 지키는데 한놈이,
"임나라 서울로부터 구경하러 왔으니 들어가게 하여 주소서."
한즉,
"네가 바칠 것이 있어야 들어가리라."
하거늘,
"바칠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쌀입니까? 무슨 보배입니까?"
"그것이 무슨 말이냐? 돈이든지 쌀이든지 보배이든지 인간에서 귀한 것이요, 임나라에서는 천한 것이니라."
"그러면 무엇을 바랍니까?"
"다른 것 아니라 대개 정이 많고 고통이 깊은 사람이라야 우리의 놀음을 보고 깨닫는 바 있으리니, 네가 인간 삼십여 년에 눈물을 몇 줄이나 흘렸느냐? 눈물 많은 이는 정과 고통이 많은 이며, 이 놀음에 참여하여 상등 손님이 될 것이요, 그 나머지는 중등 손님, 하등 손님이 될 것이요, 아주 적은 이는 들어가지 못하나니라."
"어려서 젖 달라고 울던 눈물도 눈물입니까?"
"아니라. 그 눈물은 못쓰나니라."
"열하나 열둘 먹던 때 남과 싸우다가 분하여 운 눈물도 눈물입니까?"
"아니다. 그 눈물도 값없나니라."
"그러면 오직 나라 사랑이며, 동포 사랑이며, 대적에 대한 의분의 눈물만 듭니까?"
"그러니라. 그 눈물에도 진가를 고르느니라."
이렇게 받고 차기로 말하다가 좌우를 돌아보니, 한놈의 평일 친구들도 어데로부터 왔는지 문 앞에 그득하더라. 이제 눈물의 정구가 되는데 한놈의 생각에는 내가 가장 끝이 되리로다. 나는 원래 무정하여 나의 인간에 대하여 뿌린 눈물은 몇 방울인가…… (이하 원문 탈락)